[한국성과학연구소,조선일보. 리서치플러스, 한국화이자 전국의 기혼여성 1000명 조사 결과]
조선일보 기사 발췌 | 허인정기자 njung@chosun.com,이지혜기자 wigrace@chosun.com



<상> 등돌리고 자는 남편
“피곤한데 재미도 없는걸 뭐하러해요”
기혼여성 4명중 1명이 한달에 1회 이하 섹스리스 여성30% “性문제로 이혼 고려”

나이 마흔. 거울 앞에 섰다.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으니, 눈가에 주름이 자글하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은 피아노 학원에서 9시쯤 돌아온다. 잠깐 남편을 떠올렸지만, ‘오늘도 또 늦겠지’라는 생각에 고개를 젓는다. 주부 김영희(가명)씨. “나도 한때는 예쁘다, 좋다는 남자가 많았는데….” 말끝을 흐린다. “요즘 들어 부쩍 여자로서의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부부는 왜 함께 사는가 그런 고민도 하고요.”
결혼 12년차가 맞는 권태기일까. 그녀는 “이렇게 산 지 오래됐다”고 했다.
“아이를 낳고부터 남편과의 잠자리가 한 달에 한 번도 채 안 됐어요. 30대에는 아이 키우기도 힘들고 직장 일도 바빠 별로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등 돌리고 자는 남편 볼 때마다 가슴에 찬바람이 불어요.”

출판사를 다니는 김미영(가명·38)씨는 요즘 들어 남편과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고 했다.

“남편이 저보고 바람 피우냐고 해요. 자꾸 잠자리를 피한다고요. 하지만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할 수가 없어요. 솔직히 그게 사랑인가요. 분위기도 없이 10분이면 ‘땡’ 끝나는 잠자리가….” 남편의 풀죽은 뒷모습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매번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고 했다.

남의 집 지붕 아래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조선일보와 리서치플러스, 한국성과학연구소, 한국화이자가 전국의 기혼여성 1000명을 조사한 결과, 한 달에 섹스를 한 번 이하로 하는 ‘섹스리스’ 여성은 28%에 달했다. 20대 젊은 부부 중 ‘섹스리스’ 비율도 12%를 넘었으며, 여성의 성욕이 가장 왕성해지는 40대의 불만이 가장 높았다. 응답자 중 최근 두 달 동안 단 한 번도 남편과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는 여성은 100명 중 6명 꼴이었다. 이는 98년 한국성과학연구소 조사 때보다 수치가 2배 늘어난 것이다. 이윤수 한국성과학연구소장은 “기혼여성들은 남편과 최소 주 1회의 성관계를 희망하고 있다”며 “4명 중 1명이 월 1회 이하를 기록한 것은 충격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성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대답한 여성 중 절반 이상(54%)이 결혼 생활에도 불만이 있다고 응답했다. ‘정(情)’ 만으로 살기에는 2% 부족하다는 얘기다.

결혼 생활까지 불만족스럽다고 말하게 만드는 섹스리스. 왜 시작될까. 정희정(가명·37·결혼 8년차)씨는 “너무 피곤한 게 문제”라고 했다. 밤 10시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 청소·설거지·빨래 등 밀린 일을 하고 유치원 다니는 아이 돌보면 금세 12시가 된다는 것이다.

결혼 10년차인 양신우(가명·39)씨는 “남편이 술을 마시고 와서 억지로 요구할 때마다 나를 ‘물건’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난다”고 했다.

“결혼 초기에는 그냥 아무 느낌 없이 ‘봉사’하는 자세로 누워 있을 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애들 방 가서 자요. 남편 꼴 보기도 싫고….”

주부 한미영(가명·42)씨는 “마흔이 넘으면서 남편이 더 이상 남자로 보이지도 않고 재미도 없어서 그냥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느낀다”고 했다.

문제는 겉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가정도 이 같은 성적 불만이 쌓일 경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섹스리스’인 여성 중 성적인 문제로 이혼을 고려해본 적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무려 30%에 달했다.

“남자들은 아내들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몰라요. 관심도 없고요.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만 하죠. 예전엔 싫어도 꾹 참았지만 요즘은 그냥 ‘하기 싫다’고 말해요.”

결혼 5년차 주부 이성의(가명·35)씨는 “주변에 ‘손만 잡고 잔다’며 입을 삐죽이는 친구가 갈수록 는다”고 했다.

<하> 아내에게 애인이?

“애인덕에 다시 여자로 태어난 기분”
기혼여성 63% “남편외 남성과 性관계 가능” 26%는 “외도경험”…
“애인은 항상 날 배려”

아내가 어느 날 창밖을 보고 너무도 행복한 모습으로 웃는다면. 그녀의 마음속엔 다른 사람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했다”는 38세 김영미(가명)씨. 싸이월드를 통해 옛 동창을 만난 지 석 달. 몇 번의 식사, 짧은 데이트는 곧 긴 술자리로 이어졌고, ‘경계선’까지 넘었다.

“‘여전히 예쁘구나’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오랜만에 ‘여자’로 돌아간 느낌이었어요. 남편한테 그런 얘기, 그런 느낌 받은 지 정말 오래됐거든요.”

딸(9)과 아들(7)을 둔 그녀는 ‘그’를 만나면서도 남편과 아이들 생각 때문에 내내 괴로웠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만나지 말아야지’ 결심을 해도, 전화가 기다려지고 약속 장소에 먼저 나가 기다리는 일이 반복됐다.

“친구한테 털어놨더니 질릴 때까지 연애만 하래요. 가정은 깨지 말고. 요즘 애인 한 명 없는 여자가 어디 있냐고요.”

전업 주부 이선영(34)씨는 “남편이 숨이 막혀” 몇 년 전 바람을 피운 적이 있다고 했다.

“중매로 결혼했어요. 남편은 제가 요조숙녀인 줄 알아요. 같이 잘 때 조금만 적극적으로 행동해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게 느껴지죠. 움츠리다보니 남편과의 관계가 무감각해졌어요.”

이씨는 답답한 상황을 잊으려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고 했다. 우연히 자리에 합석한 남자와 개인적으로 만났고, 처음엔 편한 친구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몸을 한 번 섞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남자에게 끊임없이 집착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결국 포기했지요. 어차피 결혼을 깰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몇 달 뒤 아이를 가졌고,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어요. 하지만 행복하다는 생각은 안 드네요.”

‘내 아내’의 이야기는 절대 아닐 거라고? 하지만 현실은 꽤 비관적이다. 조선일보와 한국성과학연구소, 한국화이자, 리서치플러스가 기혼여성 10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63%가 ‘남편 이외의 남성과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대답했다. ‘반반’이라는 응답도 21%에 달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답한 비율은 16%에 그쳤다.

현재 연하의 애인을 사귀고 있다는 결혼 15년차 박미진(43·가명)씨는 “예전엔 친구들한테 애인이 있다고 하면 ‘미쳤다’고 소리를 들었는데, 요즘은 ‘능력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법무법인 대륙의 전경희 변호사는 “결혼을 영원한 ‘약속’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늘면서 외도와 이혼이 부쩍 늘고 있다”고 했다. 여성의 사회생활이 늘고 경제력이 커지면서, 결혼과 애정에 대한 생각이 과거보다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기혼 남녀의 혼외관계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쓰기 위해 서울·경기지역 여성 196명을 면접 조사한 양다진(26·성균관대 가정관리학과)씨는 “응답자 중 26%가 과거나 현재에 혼외 관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여성들이 설문지에 자신의 경험을 적어 넣으며 솔직하고 담담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확산되는 데는 ‘외도’를 미화한 드라마·영화의 탓도 크다. 지난 96년 드라마 ‘애인’ 이후, ‘해피엔드’ ‘밀애’ ‘불꽃’ ‘세 여자’ 등을 통해 기혼 남녀의 외도는 더 이상 논란거리도 아니다. 인터넷도 이런 ‘쉬운 만남’을 부추기고 있다. ‘애인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 중 대부분은 동창회 사이트나 채팅 등을 통해 남자를 만났다고 답했다. 이은하 정신과전문의는 “드라마나 영화 등 주변 환경이 금기를 깨는 데 일조했을뿐더러, 경제력 상승으로 이혼해도 혼자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져 여성의 외도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직장 동료와 사귄다는 최영이(37·가명)씨는 “남편은 나를 집안일이나 하는 여자쯤으로 알지만, 애인은 항상 날 먼저 배려한다”고 했다. 부부는 그럼 무엇으로 사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남편도 술집 아가씨랑 ‘2차’ 나간 적 많아요. 서로 모르는 체할 뿐이죠”라고 싸늘하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