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영화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비난받는 장르는 ‘스너프’(snuff) 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성행위와 함께 강간이나 살인을 허구적인 연출이 아니라 실제로 행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범죄행위를 촬영한 것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유통시킨다면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1970년대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스너프에 대한 소문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이를 소재로 하여 여러 상업영화가 제작되었다.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영화로는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8 mm>(1999)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떼시스>(Tesis, 1996) 등일 것이다. 그러나 소문을 소재로 영화가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스너프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지는 못했다. 과연 스너프는 실제 존재할까? 아니면 단지 상상과 허구에 지나지 않을까?

스너프 영화 신화의 기원은 1973년에 안티포르노그래피 단체의 의장인 레이몬드 가우어가 여성을 살해하는 극단적인 포르노가 유통되고 있다고 선언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아담」과 인터뷰하는 가우어. “나는 스너프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 부탁으로 비밀리에 그런 영화가 있는 지를 조사했던 사람도 결코 보진 못했어요. 하지만 이러한 영화가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러한 가우어의 주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추측만 할 뿐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스너프 신화는 특히 페미니스트에 의해 확산되었으며, 그 한 예가 안드레아 드워킨의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포르노영화 중에는 여성을 실제로 강간하고 몸을 마디마디 자르며 끝내는 죽이는 것들도 있다.” 캐서린 매키넌도 이와 유사한 견해를 피력했지만, 두 사람 모두 실제 스너프 영화의 예를 들지는 못했다.

페미니스트와 함께 언론매체도 스너프에 관한 소문과 신화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하였다. 「뉴욕 포스트」와 「데일리 뉴스」를 비롯한 타블로이드신문들이 스너프 영화에 대한 기사를 실었으며, 이를 호재로 하여 영화 제작에 나선 이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알렌 새클턴은 1970년에 마이클과 로베로타 핀들레이가 만든 <도살자>(Slaughter)라는 제목의 저예산 영화 판권을 샀다. 이 영화는 처음에는 극장에서 상영도 되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었으나, 아르헨티나에서 추가 촬영한 10분 정도의 분량을 삽입해서 <스너프>란 제목으로 개봉했다. 단적으로 말해서 시류에 편승한 것이다.

‘실제상황’이라는 주석을 달았던 이 영화의 내용은 한 여성의 손가락을 모두 자르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다리와 가슴 순서로 난도질하는 것이다. 새클턴은 이 영화가 ‘실제’라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으나, 관객들이 사실로 믿게끔 만들었다. 곧 이어 경찰에서 이 영화의 제작과정을 둘러싼 조사가 시작되었지만,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 여성의 공개 인터뷰로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이 영화는 세인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으나, 스너프 영화가 유통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아직까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혹자는 스너프가 존재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주장한다. 아주 적은 비용을 들이면서도 컴퓨터그래픽과 같은 첨단기술 등 막대한 제작비를 들이는 것보다 훨씬 큰 충격과 사실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언뜻 듣기에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물론 누군가가 성범죄를 저지르고 이를 녹화할 수 있다. 심지어 이를 유통시킬 수 있다는 생각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범죄 행위를 촬영하고 유통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로렌스 오툴의 주장에 의하면, 강간 장면을 촬영한 범죄 기록 중에서 성인 영화산업이나 포르노 소비자와 관계있는 것은 전혀 없다. 따라서 이러한 소문은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포의 존재’처럼 더욱 부풀려졌다고 볼 수 있다. 아무도 보진 않았지만,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그러한 신화처럼 말이다. 오툴은 스너프와 관련된 소문과 인식이 포르노를 부정적으로 보는데 크게 공헌했다고 주장했다. 즉 ‘스너프’라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포르노 억압책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안티포르노운동가 비벌리 라벨은 스너프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스너프에 표현된 살인이 실제인지 아니면 허구인지를 가리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작 주목해야 할 점은 성폭력이 성적 엔터테인먼트로서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즉 여성을 살해하고 토막내는 것이 상업 영화의 소재로 이용하는 자체가 여성, 즉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대로 스너프에 묘사된 잔인한 폭력이나 살해 장면이 실제가 아닌 허구라면, 그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그러한 이미지는 포르노보다는 다른 영화 장르에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비디오 내스티’(video nasty: 공포영화로 제작된 비디오 장르)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 영화들은 소름끼치고 여성혐오적인 슬래셔영화(slasher)의 극단적인 예가 많이 등장하는데, 존 카펜터․아벨 페라로․브라이언 드 팔마 같은 감독의 세련된 표현 기법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편 스너프를 아동 포르노와 연관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브래트 E. 엘리스의 소설 「레스 댄 제로」(Less Than Zero, 1985)에는 스너프를 불법적인 아동 포르노와 유사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현대 포르노 산업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어린이를 등장시킨다는 점인데, 이는 단적으로 아동 성범죄이다. 최근에는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에서 제작된 아동포르노를 비판하는 소리가 높지만, 공염불처럼 들리는 건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걸 반증한다. 그리고 이미 오래전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과 함께 이 지역에서 제작된 아동 포르노가 서유럽에서 밀거래되고 있었다.

출처 : 세계일보 e-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