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를 언급하면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사드 후작(Marquis de Sade)이다. 그는 18세기 말에 일련의 음란소설을 집필했는데, 그 당시에 이미 미래의 포르노 주제를 모두 사용해버렸다. 그가 사용한 소재는 근친상간, 강간, 존속살해, 남녀 동성애, 미성년자 성폭행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성적 학대와 고문이다.

오늘날 전 세계를 주도하는 어느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 내용도 이미 그의 생각을 답습한 것이다. 포르노그래피 역사에 있어서 사드를 능가하는 작가는 없다. 그의 작품 소재의 무한성과 극한성 그리고 소설의 내용이 상상이 아닌 체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사드를 소재로 다양한 유형의 영화가 제작되었는데,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상업영화로는 〈사드〉(Marquis de Sade, 1996) 와 〈퀼스〉(Quills, 2000)가 있다. 이 두 영화는 동일한 인물을 다루고 있음에도 큰 차이점이 있다. 즉 전자가 상대적으로 그의 젊은 시절을 그렸다면, 후자는 말년의 모습을 표현했다.

또한 〈사드〉는 B급 영화로서 〈퀼스〉에 비해서 작품성이나 극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작가적 역량은 물론이거니와 배우들의 연기력도 어설프기 그지없다. 반면 〈퀼스〉는 상당한 제작비를 들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스타들이 열연을 펼쳤다. 사드 역을 맡은 제프리 러시와 이중인격자 의사 마이클 케인의 갈등구조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타이타닉〉으로 주가를 올린 케이트 윈슬렛의 순수한 이미지가 극을 매끄럽게 이끌었다.

그렇지만 필자가 만일 두 영화중에서 한편을 추천하라면 〈퀼스〉가 아닌 〈사드〉이다. 그 이유는 〈퀼스〉에서 묘사된 사드는 속칭 무늬만 소름끼치는 성도착자이지 어찌 보면 정신이 이상해진 늙은 철학자처럼 비쳐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가 알고 있는 온갖 기괴하고 엽기적인 성행위 장면은 표현되지 않았다. 반면 〈사드〉는 극의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우리가 들어 온 엽기적이고 외설적인 장면이 많아, 오히려 사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사드〉에서는 주인공과 아내 사이가 아주 나쁘게 묘사되고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은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부부이다. 사드는 명문귀족 출신이고 부인 몽트뢰유는 이름만 귀족인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다. 선천적으로 방탕한 그는 영화에서처럼 아내를 팽개친 채 매춘부들과 지내기 일쑤였다.

그는 매춘부에게 채찍질을 하고 당시 종교법상 사형도 당할 수 있는 항문섹스 등 온갖 성도착 행위를 일삼았다. 이 일로 인해 13년이나 교도소에 수감되었으며, 매춘부 독살 기도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럼에도 몽트뢰유는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섬겼다. 그녀는 27년의 결혼생활 동안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다.

영화와는 정반대로 몽트뢰유는 남편을 구명하는 데 힘썼으며, 사형을 취하하는 재판을 재개토록 했다. 남편을 면회하면서 정기적으로 필기도구를 갖다 주고 그가 쓴 원고를 외부로 유출하였다. 이후 수녀생활에 위안을 느끼던 그녀는 사드가 사면을 받아 석방되었을 때 이혼을 감행한다.

사드의 주요 작품으로는 『소돔의 120일』(Les 120 Journées de Sodome, 1784), 『미덕의 재난』(Les Infortunes de la vertu, 1787), 『쥐스틴』(Justine, 혹은 les malheurs de la vertu, 1791), 『규방 속의 철학』(La Philosophie dans le boudoir, 1795), 『악덕의 번영』(les prospérités du vice, 1796), 『쥘리에트』(Juliette, 1798) 등이 있다. 이들 작품에는 무려 6백여 가지의 성도착 행위가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대부분의 소설을 감옥에서 썼는데,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성욕을 글로써 해소하였다.

사드의 작품 중에서 유난히 매춘부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그의 사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로즈 켈러를 비롯한 여러 매춘부를 성적 학대한 혐의로 교도소에서 수많은 세월을 보냈으며, 그러한 전력이 소설 속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그의 소설에는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을 철저히 배격하였다. 사드는 여성의 정숙함이나 순결에 냉소를 보내고 ‘결혼’이라는 굴레를 타파하려 했다.

심지어 모성애를 비롯한 가족 간의 우애도 매도하였으며, 매춘, 방종, 낙태를 일종의 자연권으로 간주하였다. 사드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남녀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는 게이나 레즈비언도 포함된다. 굳이 성행위 상대를 구분하자면 남녀가 아닌 지배자와 피지배자 관계이다. 한쪽은 철저한 성적학대자(사디스트)이며 다른 한쪽은 마조히스트가 되는 것이다.

올 2007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사드를 소재로 한 작품이 소개되었다. 충격적인 영상을 볼 것이라 예상했던 필자의 기대와는 달리 밋밋하게 이어지는 ‘장황한 토크’의 영화 <사드이야기>(Contes Cruels du Seigneur de Lacoste ou les Impostures de L'amour, Les, 2006).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감독 앙트완 코폴라는 사드를 위대한 문학작가로 간주하였다.

한편으로 일부 학자들은 사드를 혁명가의 대열에 올려놓았다. 사드가 혁명 이전부터 정치선동을 하고 혁명이 진행 중이던 1792년에 파리에서 피크당(les Picques) 혁명 분과의 간사였다는 점 그리고 소설에서 기존 질서를 비판했다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심지어 사드를 도덕주의자 혹은 성욕을 충족시켜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옹호한 투사로 간주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된다. 그 이유는 혁명 대열에 참여한 포르노 작가의 글과 사드의 글은 성격상 분명한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사드는 여타 포르노 작가와는 달리 일반 사람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성도착 행위를 묘사하였다. 사드가 혁명의 대열에 잠시 참여했다고 할지라도, 그는 계속되는 성도착적 행동으로 거의 반평생을 감옥에서 지냈다.

따라서 사드의 작품 속에 사회비판 의식이 담겨 있다고 할지라도, 이는 지엽적인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 유형 중에서 최고로 짜릿한 쾌감을 주는 성행위는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라는 자신의 주장대로, 사드는 극도의 성도착자이자 포르노 작가일 뿐이다. 재언하건대, 사드는 기존의 규범과 질서를 뒤엎으려는 혁명 전사가 결코 아니다. ‘혁명을 위한 포르노 작가’가 아닌 ‘포르노 분야의 혁명을 주도한 작가’일 뿐이다.

출처 : 세계일보 e-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