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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역사는 구멍과 함께 한다. 양다리 갈라진 틈새의 자연공(自然孔)에서 생명을 받은 후 굴착공(掘鑿孔)인 묘혈(墓穴)에 묻힐 때까지 한평생 구멍에 몰입, 천착(穿鑿)한다. 구멍에서 나와 구멍에서 살다가 구멍으로 되돌아가는 혈거인(穴居人)인 셈이다.

 

 입 구멍으로 섭취한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기면 금세 소화시켜 흡수한다. 쓰고 남은 음식 찌꺼기 가운데 물에 녹지 않은 오물은 항문 구멍으로, 수용성 쓰레기는 수채(오줌)구멍을 통해 배설하는 자동 분뇨 분리 시스템이 작동된다.

 

치산치수(治山治水)가 치세의 핵심인 것처럼 치혈치수(治穴治水)는 건강을 다스리는 중요 포인트다. 황폐한 산지를 녹화, 보호하고 하수(河水)를 조절하여 홍수 재해를 방지하는 것은 물론 각종 용수(用水)확보를 도모하는 일이야 말로 사람들 모여 사는 세상에 얼마나 중요한가? 인체도 마찬가지다. 인체 도처에 뚫려있는 구멍과 구멍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잘 다스려야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체는 온통 구멍투성이며 노폐물을 배설시키는 통로로 쓰인다. 약200만~500만 개의 땀샘(1c㎡당 평균 150~340개 정도)이 도처에 깔려있어 체온 자동 조절기로 기능하고 기름구멍을 통해 배출된 기름이 피부를 보호한다. 또한 이목구비(耳目口鼻) 7공(孔)에다 남성의 요변(尿便) 2공, 여성의 요변성(尿便性) 3공의 대공(大孔)이 존재한다. 고등 동물일수록 대공의 숫자가 많다는 사실을 수용한다면 9공 남성에 비해 10공 여성이 더욱 진화된 생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벌의 여성 밑구멍이야말로 다사다난한 온갖 가지 인간사를 연출하는 문제의 구멍이다.

 

단 한 개의 엑스트라 홀(extrahole)! 단순하게 패인 도끼 자국이 아니다. 원시적이며 경이로운 생명력을 지닌 입니다. 입을 흠뻑 채워 소란을 피워야만 옹알이 같은 야만의 소리를 내는 불가사의한 악기(樂器). 종맥(種脈)을 중개하는 창조의 구멍, 살맛나는 쾌감을 창출하는 원색의 구멍, 난동 같은 좌충우돌과 우격다짐으로 범람하는 구멍, 치솟는 불기둥으로 제압, 소진(燒盡)되는 원시의 벨벳 구멍, 엄청난 크기의 제방을 무너뜨려 비산(飛散)시키는 작은 구멍의 괴력을 본다. 수컷을 무차별 빨아들이는 블랙홀. 빨려 들어가기만 하면 권위, 위엄, 체면까지 송두리째 배제한 원시적 인간의 동물성을 가감 없이 노정(露呈)시키는 구멍의 위력을….

 

구멍은 사랑과 미움, 질시와 갈등이 뒤얽힌 복마전이다. 마개도 자물쇠도 없는 소도무문(小道無門). 하지만 우주와 상통하는 신비한 구멍. 도둑질, 비밀 무단 임대, 용도 변경이 예사롭게 횡행하는 태생적 범죄 소굴이다. 생계형 구멍가게는 무당 다음으로 오래된 전통의 직종이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가 존재한 곳이라면 여지없이 함께해 왔다.

 

구멍의 사유화! 여인의 운명과 팔자-행운 아니면 불행-가 결정되는 사행성 결단이다. 막대의 막대한 금력과 권력을 무상 양도 받아 신분의 수직 상승을 이루기도 하는 탁월한 구멍이 있는가 하면 파멸의 깊은 나락으로 침잠시키기도 하는 초라한 구멍도 있다. 모두가 구멍의 다양한 잠재력에서 비롯된다. 구멍을 갈고 닦아 만들어진 명기에 돈줄과 힘줄을 매달아 명품 인간 대열에 끼어든 역사적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명품은 거물을 기대하지만 명기는 걸물을 찾는다. 돈을 잔뜩 바른 명품은 허다하되 명기는 드물고 모조(模造) 거물은 허다하되 진정한 걸물은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