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스타의 생활상을 다큐 형식으로 만든 <걸스 라이프>(This Girl's Life, 2003)는 미국 개봉 당시 ‘R등급’을 받을 정도로 리얼한 섹스장면이 화제가 됐었다. 국내에서는 심의 문제로 몇 차례나 개봉이 지연되어 올 3월에서야 온라인 상영관과 오프라인 극장에서 동시 개봉할 예정이다. 이렇듯 산고를 치르면서 국내에 개봉되는 이 영화에 대해, 필자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포르노영화 관련 논문이나 책을 집필한 학자로서의 관심보다는, 관객의 입장에서 얼마나 가위질을 당할 지 그리고 흥행에 어느 정도로 성공할 지를 두고 한 말이다.

몇 년 전에 이 영화와 유사한 형식의 <애너벨 청 이야기>(Sex: The Annabel Chong Story, 1999)가 국내에 개봉된 적이 있다. 실제 포르노스타가 출연하고 엽기적인 갱뱅 이벤트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세인의 주목을 받았으며, 수입업자간에 과당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개봉이 되자, 흥행에 참패했다. 왜 그랬을까? 여러 요인을 언급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볼거리’라는 측면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즉 영화에서는 애너벨이 이벤트를 벌이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와 그 당시 소감을 피력하고 있지만, 관객은 그보다는 충격적이며 자극적인 영상을 기대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걸스 라이프>가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킬지는 미지수이다. 그만큼 한국의 관객은 영상물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법의 잣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걸스 라이프>가 포르노배우의 삶을 현실적으로 조명한데에는 공감이 간다. 포르노 배우하면 으레 생각하는 어두운 과거 혹은 세파에 찌들거나 범죄단체로부터 협박을 받는 등의 선입견이 이 영화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 문(줄리엣 마퀴스 분)은 당당하게 성행위를 연기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호감가는 남성에게 먼저 섹스하자고 제의도 한다. 파키슨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제임스 우즈 분)에게는 다시없는 효녀이며, 돈을 받고 의뢰인의 애인을 유혹해보는 일을 하면서 죄책감도 느낀다. 특히 그녀는 섹스산업의 종사자로서, 나름대로의 직업윤리도 갖고 있다. 이러한 점은 다큐멘터리 감독 루이사 아킬리의 <벌거벗은 페미니스트>(The Naked Feminist, 2003)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영화 역시 포르노에 관한 여성의 부정적인 인식을 정면으로 반박하기 때문이다.

▲ 2005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일반 상영관에도 개봉된 포스터    
몇 년 전부터 한국 영화계에 불어 닥친 바람 중의 하나가 ‘영상물 허용 기준’의 완화이다. <아타나주아>(Atanarjuat, 2001)에서 주인공 남성이 성기를 드러낸 채 도망을 치는 장면을 놓고서 등급위원들 간에 실갱이를 벌인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치부를 드러내는 장면은 더 이상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위에 언급한 <걸스 라이프>를 비롯하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제를 낳았던 <몽상가>(The Dreamers, 2003)와 <천국의 나날들>(Szep napok, 2002)이 일반 상영관에서 당당히 개봉되었으니 말이다. 하긴 이러한 상황은 속칭 예술영화 혹은 일반 상업영화에 국한된 것 같진 않다.
 
바로 포르노영화의 국내 허용 여부를 염두에 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한국에서는 포르노를 금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계선을 허무는 일들이 속속 일어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목구멍 깊숙이>를 소재로 만든 다큐 형식의 <인사이드 딥스로트>(Inside Deep Throat, 2004)의 일반 상영관 개봉이다. <목구멍 깊숙이>는 1972년에 개봉되어 전 미국을 들썩이고 포르노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작품이다. 제작비 2만 5천 달러를 들여서 총수익 6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이 영화는 미국 개봉 당시 일종의 ‘국민영화’로까지 떠올랐다. 놀라운 사실은 <인사이드 딥스로트>에는 실제로 포르노스타 린다 러브레이스가 오럴섹스를 하는 장면이 10여초 간 나오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명동에 있는 어느 극장의 개관 작품으로 당당히 상영된 것이다. 한술 더 떠 2006년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된 <디스트릭티드>(Destricted, 2006)는 실험영화 형식을 띤 일종의 포르노영화였다.

재언컨대 한국은 포르노금지국가이며, 그에 따라 <목구멍 깊숙이>는 상영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영화를 소재로 한 다큐영화가 개봉되고 흥행에 크게 성공한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부천국제영화제에서 <디스트릭티드> 상영 직전에 수석프로그래머가 관객을 향해 문화적 충격을 우려했으나, 종영 후의 관객 반응은 너무나도 담담했다.

포르노영화는 금지했지만 그걸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일부의 우려 섞인 시선을 무안하게 만들 정도로 <디스티릭티드>에 대한 의연한(?) 관객의 태도. 바로 이러한 모순된 상황이 한국이 현재 처한 성인영화와 포르노영화에 대한 입장이 아닐까. 이제 한국에서 포르노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고 해도, 이는 허울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한국은 포르노 천국은 아닐지라도 이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인터넷 강국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만의 섹티즌들이 ‘정보의 바다’ 아니 ‘포르노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더욱 말초적이고 자극적이며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출처: 세계일보닷컴